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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에 건강보험 문제를 제기한 분도 있고 해서 작은 책 원고로 썼는데 두배가 훨씬 넘고 말았습니다. 애구 줄이는 것도 또 일인데... 사실 의료분야는 생소해서 사실이나 논리에서 틀린 점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많이 지적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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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건강보험은 안전할까? - 한미 FTA와 의료법 개정안

정태인(경제평론가)

과연 건강보험은 안전할까?

기껏(?) 마흔여덟의 나이에 아무래도 나는 시시콜콜 걱정이 많은 노인네가 되었나 보다. 그리 미덥진 않아도 그나마 우리 건강의 파수꾼 노릇을 하던 건강보험이 내 눈에는 바람 앞에 등불인데, 정부는 그저 괴담이라고 하니 말이다.

협정문만 본다면 과연 정부 말이 맞다. “(환경, 건강, 교육과 같이) 공공성이 강한 분야에 대해서는 정부의 모든 규제 권한을 포괄적으로 유보(미래유보)”했다(한미 FTA 상세설명자료). 공공성 강화를 위해 어떠한 정책도 마음 놓고 쓸 수 있다고 해석해도 무리가 없다.

뿐만 아니라 투자챕터의 저 악명 높은 투자자-국가제소권(ISD)의 적용 대상도 아니다. 보건,환경,안전(그리고 부동산가격 안정정책)은 ISD의 일반적 예외로 되어 있다. 내 개인적 경험도 보탤 수 있다. 2006년 2월 3일, 한미 FTA의 협상 개시 선언을 하고 2월 14일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추인을 한 뒤에야 대통령은 내 면담 요청을 받아 들였는데 그 자리에서도 대통령은 건강보험만은 지키겠다고 했다. 그러니 내 걱정은 ‘기우’에서 비롯된 ‘괴담에 불과한가?

그러면 얼마나 좋으랴. 나는 아직도(!) 대통령의 ‘선의와 충정’을 믿는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대통령은 미국-재벌-재경부-조중동의 장기 계획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다른 지면에서 정부의 물산업 육성정책이 사실상 물 민영화에 다름아니며, 우리 스스로 민영화/개방한 뒤에는 여지없이 한미 FTA가 위력을 발휘한다고 썼다. 그런데 물산업 육성대책 이전에 발표된 것이 또 있다. 바로 건강보험을 포함한 의료제도의 변화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의 건강보험은 바야흐로 낭떠러지로 향한 외길로 떠밀려 가고 있다.

서비스산업 경쟁력 강화와 의료법 개정

“세계 중에서도 미국과 경쟁해서 살아 남아야 세계 최고가 될 수 있습니다. 공공서비스와 문화적 요소는 보호하되 산업적 요소는 과감하게 경쟁의 무대로 나가야 합니다.”(대통령 특별담화, 4.2) 이것이 핵심이다. 협정문 상에 개방되지 않아도 우리 정부는 “과감하게 경쟁의 무대로 나가야” 한다. 이제 모든 개방/민영화 정책은 산업경쟁력 강화라는 이름을 걸고 나온다.

재경부는 의료서비스의 다양화, 첨단화를 유도하기 위해 의료부문에도 영리개념을 도입해서 수익성 추구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서비스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종합대책” 2006.12.16). 내 보기에 그 내용은 재경부가 뼈저리게 겪은 경험, 즉 외환위기 때 일어났던 금융산업의 구조조정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다. 과잉공급상태인 동네 의원을 구조조정해서 대형 병원이 인수합병하거나 계열화하고 이를 촉진하기 위해서 금융지주회사에 해당하는 병원경영지원회사(MSO)를 설립할 수 있게 한다. 여기서 MSO는 자본을 조달하고 각급 병원의 지분을 채권화(securitize)하는 역할을 한다. 주식시장에서 회사를 그렇게 하듯 병의원을 자유롭게 사고 팔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사전 작업으로 삼성의료경영연구소는 우리 의료산업의 경쟁력이 미국의 26%, 일본의 38% 수준에 불과하다고 발표했다(2006.2). 우리는 얼마나 불행한가? 세계적인 의료산업을 육성하여 국민이 질높은 의료서비스를 누리기기 위해서 대대적인 개혁을 해야 한다. 답은 단 하나, 시장에 모든 걸 맡기면 된다. 얼마나 멋진 신세계 인가? 한국은 세계적인 물산업, 의료산업, 교육산업을 가지게 될 것이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장관은 삼성-재경부의 기획을 의료법 개정안에 충실히 반영했다.  

민간보험의 역할 - 실손형 보험상품이라는 괴물

여기서 의료법 개정안의 내용 하나 하나를 꼼꼼히 따질 여유는 없다. 다만 이 모든 항목이 오로지 시장에 모든 걸 맡겨서 효율성을 향상해야 한다는 데 맞춰져 있다는 점만 확인해 둔다. 혹시 병의원이 인수합병되건 어쩌건 서비스만 좋아지면 되는 게 아니냐고 생각하실지 모른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움직임은 우리의 건강문제에 직결돼 있다.

특히 민간보험의 역할에 주목해야 한다. 재경부나 삼성은 건강보험이 비효율의 원흉이라고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의 교과서인 미국에는 건강보험과 같은 사회보험이 없다. 기껏해야 찢어지게 가난하거나(medicaid) 늙은 사람들을 위한(medicare) 의료보장제도(전체 국민의 30% 미만에 해당)가 있을 뿐이다.  

미국 의료산업의 경쟁력은 곧 시장이라는 총구에서 나온다. 병원과 보험회사는 자유롭게 계약을 맺는다(계약지정제). 의사의 진료행위에 대해서 가격협상이 이뤄져야 하고 병원의 대형화, 네트워크화에 의해 원가는 절감되어야 한다. 병원끼리도 경쟁하고, 보험회사끼리도 경쟁하면 결국 의료서비스의 가격은 떨어지고 질은 높아지지 않겠는가?

의료산업에 시장원리를 도입하는 첫 실험이 바로 실손형 보험상품의 도입이다. ‘촌스러운’ 보건복지부, 즉 그래도 의료의 공공성이 파괴될까 주저하던 보건복지부의 팔을 비튼 것은 재경부였다. 재경부는 영리법원 개설도 요구했지만 보건복지부는 80% 이상의 병원이 찬성한다고 밝히면서도 ‘한미 FTA를 앞둔 사전 작업’이라는 ‘오해’를 우려해서 이번 개정안에서는 포기했다(보건복지부 2007년 대통령 연두 보고).

실손형이 뭐길래?

요즘 광고에 나오는 민간건강보험은 대부분 정액형이다. 즉 암에 걸리면 얼마를 지급한다는 식이다. 실손형이란 국가의 건강보험이 보장해 주지 않는 부분(‘비급여 비용’이라고 부르며 현재 총 진료비의 약 30-40%)에 대해 실비로 보험회사가 지급하는 형태를 말한다. 이 때 보험회사는 병원과 진료비 가격 계약을 하고 그 내용을 선전해서 보험 계약자를 모집할 수 있다. 미국식 계약지정제가 도입된 것이다. 이제 계약자는 보험회사가 지정한 병원만을 갈 수 있다.  

보험에 가입한 사람도 자신의 자유의사에 따라 가입하고, 보험회사와 병원도 자유로운 계약을 했으니 시장원리에도 맞고 건강보험을 보충한다는 면에서 바람직해 보일 것이다. 그러나 이 제도는 곧 불행의 씨앗이다.

실손형 보험은 환자의 건강상태에 따라 보험회사의 수익이 결정된다. 신체검사는 당연하며 나이에 따른 차별도 추가된다. 예컨대 현재 기획된 실손형 상품을 보면 암, 고혈압, 당뇨 등 심각한 질환이나 치질, 디스크, 치매 등 만성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은 제외된다. 56세 이상의 노인 역시 기피 대상이다. 즉 보험회사는 젊고 건강한 사람을 골라서 수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사용한다. 이것이 바로 맛있는 부분만 골라먹는 크림 스키밍(cream skimming)이며 경제학 용어로 한다면 시장분할에 의한 가격차별화이다. 더 절실하게 건강 보험이 필요한 사람은 제외되거나 아니면 더 많은 돈을 내야만 한다.

건강보험의 붕괴

약간의 경제학 지식을 지니고 있다면 이 다음에 일어날 일을 유추할 수 있다. 첫째, 정부도 의료산업 ‘육성’=민영화의 전제로 얘기하고 있는 공공성의 강화(공공병원의 증설,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에 반대하는 유력한 그룹이 생겨난다. 젊고 건강한, 경제력있는 사람들은 실손형 보험을 충분히 구입해서 치료비 걱정이 거의 없는데 보험료를 더 내라니 불만을 품을 것이다. 더구나 소득에 비례해서 보험료를 내기 때문에 자신에게는 거의 이익이 없는 일에 돈을 더 많이 내라는 것이니 반대할 수 밖에 없다. 불행하게도 이들은 언론 주도층이다. 1988년 정확히 미국에서 일어난 일이 이것이다. 미국의 보충형 민간의료보험인 메디갭(medigap)에 들어 진료비를 해결한 중산층 이상은 메디케어의 보장범위를 크게 확대하려는 MCCA에 적극 반대했다.

둘째, 국민 전체의 의료비가 증가한다. 본인 부담금을 완전히 해결해 주는 민간의료보험이 있다면 그것은 병원에 한번 더 가는 한계비용을 0에 가깝게 만든다. 당연히 한번 갈 병원을 두 번 가게 만든다. 유시민 전 장관이 인사 청문회에서 ‘도덕적 해이’를 들어 실손형 보험의 도입에 반대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불행하게도 그 덤터기는 건강보험이 뒤집어 쓴다.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이라면 부자들이 한번 더 병원에 간 비용의 70% 정도는 건강보험에서 지출하기 때문이다. 건강보험 재정은 악화되고 보험료를 올리려 하면 다시 한번 부자들의 저항에 부딪힌다. 이건 프랑스에서 발생한 현상이다. 보험료 인상이 병원비 증가를 따라잡지 못하면 건강보험의 보장성은 줄어들 수 밖에 없다. 건강보험에 대한 불만이 쏟아지고 민간보험의 활동영역은 그만큼 넓어진다.

셋째, 병원의 양극화가 촉진된다. 예를 들어 1년에 300만원짜리 비싼 보험을 만들어 판 회사는 부자들이 좋아하는 고급 대형 병원과 계약을 맺었을 것이다. 실손형 보험은 의사들의 추가 수입을 보장해 준다. 자신이 실력있는 의사라면 이런 병원으로 몰릴 것이다. 이미 성형외과에 유능한 의대생들이 몰리는 이유가 우리의 미래를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성형외과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이 현상은 영국에서 발생했다.

여기에 한미 FTA가 또 있다

그래도 건강보험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라고 강변할지 모른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한미 FTA를 맺으려 하고 있다. 건강보험이 미래유보에 들어 있다고 해도 안심할 수 없다.

예컨대 민주노동당처럼 무상의료(말하자면 건강보험이 100% 보장을 해 준다) 정책을 시행하려 한다거나 모 대통령 후보처럼 암만큼은 건강보험이 보장해 준다고 하면 AIG는 어떤 행동을 취할까? 바로 투자자 국가 제소권을 사용할 것이다. AIG가 애써 모은, 무슨 무슨 보험 가입자들이 줄줄이 해약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정책에 의해 투자자의 이익이 명백하게 훼손되었다. 세명으로 이뤄진 중재단에 이 정책의 운명은 맡겨진다. 지면 천문학적 보상금을 물어야 한다. 이런 위험을 무릅쓰면서도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확대하려는 공무원이 있을까?

더구나 한미 FTA의 현재유보 리스트에는 아주 특이한 것이 들어 있다. 바로 경제자유구역이다.  미국형 FTA의 현재유보에는 래칫 원리라는 것이 적용된다. 현재의 수준에서 더 개방할 수는 있어도 거꾸로 되돌릴 수는 없다는, 역진불가능 원리이다.

현재 이 경제자유구역에 설립된 외국병원은 건강보험 환자를 받지 않는다. 100% 순수하게 민간보험환자만 받는 것이다. 정부는 경제자유구역의 성과를 보아 그 수를 늘리려 한다. 아니, 아무리 부작용이 많이 발생해도 경제자유구역을 취소할 방법조차 없다. 이번에도 투자자 국가 제소권이 기다리고 있다. 예를 들어 송도국제병원이 병원 건물을 짓고 설비를 들여왔는데 경제자유구역이 취소된다면 가만히 앉아서 손해를 보고 말까?

이 병원은 언제나 1인실을 이용할 수 있고 워낙 비싸기 때문에 줄을 설 필요도 없다. 많은 환자를 받지 않으니 의사들도 친절하다. 1년에 1500만원 이상의 보험료를 내라고 해도 부자들은 이 병원을 이용하려 할 것이다.

이 병원과 경쟁하는 삼성의료원이나 아산병원이 가만히 있을까? 이들은 송도국제병원과 동일한 처우를 해 달라고 요구를 할 것이다. 재경부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영리법인을 허용하고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를 해제하려고 할 것이다. 억측이 아니다. 대통령이 최고의 보고서라고 극찬한 국민경제자문회의의 보고서(2006.11)는 ‘당연지정제의 재고’를 이미 주장한 바 있다.
 
부자들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자신은 민간보험으로 모든 치료를 다 받는데 국가의 강제에 의해 건강보험료를 또 내고 있으니 말이다. 이미 우리가 경험한 것처럼 위헌소송을 낼지도 모른다. 결국 부자들을 건강보험에서 빼 주게 되면 그 다음은 거의 자동적으로 건강보험의 붕괴가 이어진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역선택’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부자들이 빠져 나가면 보험료는 덜 내고 보험금은 많이 받아가는 사람들(질병과 소득은 반비례한다)이 남는다. 건강보험 재정이 악화되고 보험료를 올릴 수 밖에 없다. 이제 남아 있던 사람들 중 가장 소득이 높은 사람들이 건강보험에서 빠져 나간다. 또 다시 보험재정은 악화된다.

그렇게 미국을 닮고 싶은가

이것이 미국의 현실이고 곧 우리의 미래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의료비를 지출하는 나라(2003년 기준 1인당 평균의료비 5635$), 그러면서도 국민의 건강수준은 최하위권인 나라가 재경부의 목표다. 5000만명 이상이 아무런 보험도 없이 살아간다. 가족 보험료가 1년에 평균 1000만원에서 1500만원에 이르는데 가난한 사람이 언감생심, 보험에 들 수 있으랴.

손가락이 곪아도 병원갈 돈이 없어 손가락을 자를 수 밖에 없는 나라(다큐멘터리 ‘출혈’), 그래서 수퍼마켓에서 간단한 수술도구를 파는 나라, 그 나라가 그렇게 좋은가? 대통령 후보마다 메디케이드나 메디케어의 확대를 외치지만 결국 초국적 보험회사와 대형 병원에 밀려 이를 영원히 실행할 수 없는 나라가 바로 우리의 미래다. 그리도 좋은가?  

물산업을 예로 들어 네트워크 산업의 개방/민영화가 가져올 미래를 그렸고 이번엔 의료산업의 예를 들었다. 자발적 개방/민영화와 한미 FTA가 가져올 비극이다. 그러나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교육, 의료 시장은 전혀 개방되지 않았고, 방송 등 문화산업 분야도 크게 열리지 않았습니다. 이 역시 아쉬운 대목입니다”(대통령 담화, 4.2) 그리 걱정하실 필요 없다. 그 아쉬움은 재경부가 곧 해결해 드릴 것이다. 무슨 무슨 산업의 육성이라는 이름으로 자발적 개방/민영화 정책가 시행되면 한미 FTA는 되돌아갈 길을 끊어 버릴테니까...
by 쭈쭈봉 2007. 10. 9. 12:50